오늘도 ‘열공하는’ 이 시대의 축구해설가

 

이변이 없는 한 축구는 먼 훗날 인류 역사에 가장 범세계적인 대중 스포츠로 기록될 확률이 높다. 월드컵 시즌마다 일상을 뒤흔드는 광적인 응원 열기, 수 조원 대의 천문학적 중계권료를 받으며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유럽 축구리그, 축구공 하나만 있으면 하루 종일 신나게 뛰노는 지구촌 사람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에게도 길거리 응원으로 뜨거웠던 2002년의 추억이 생생하다.

 

“쉽게 말하면 전 세계 어딘가에서 축구 경기가 열리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고 봐야죠. 이른바 ‘축덕(축구 덕후)’들이 즐길 수 있는 축구 콘텐츠는 매일 매일 만들어집니다. 직업을 떠나 저처럼 축구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정말 너무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입니다.”

 

축구팬들 사이에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인 한준희(49) 축구해설위원은 24시간 지구촌 어딘가에서 열리고 있는 축구 경기 덕분에 화수분 같은 삶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다. 취미 삼아 즐겨 보던 축구를 직업으로 삼게 된 행복한 축구 덕후는 어젯밤에도 잉글랜드 프로축구 경기를 챙겨 보다 아침 무렵, 난생처음 병원 응급실에 갔다 왔다고 했다.

 

“몸에 좀 무리가 갔는지 아침에 갑자기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요.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워 응급실로 달려갔더니 이석증이라는 진단이 나왔어요. 몸에 피로가 쌓여 그렇다더군요. 이제 저도 나이가 있으니 가능한 밤샘은 안 하려고 하는데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겠어요.”

 

새해 벽두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개막을 앞두고 있는 요즘, 그는 여전히 국내 언론매체에서 제일 많이 찾는 축구 전문가이다. 새로 부임한 벤투 감독 체제의 국가대표 팀 경기 전망과 풀어야 할 축구계 현안들, 심지어 간밤에 열린 해외 축구 코멘트를 얻기 위해 걸려오는 기자들의 전화는 몇시간 되지도 않는 단잠을 깨우기 일쑤다. 그래도 그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가 전혀 귀찮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가 좋았어요. 일곱 살 무렵이던 1976년 차범근 선수가 종료 5분 전에 극적인 해트트릭을 기록한 대통령컵 말레이시아전을 본 뒤로 축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죠. 1980년대 중반까지 MBC에서 밤 11시가 넘어서 독일 분데스리가 경기를 짧게 편집해 하이라이트 형식으로 보여주곤 했는데

TV 앞에서 그 시간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리곤 했습니다. 공부 때문에 잊고 있던 축구에 다시 빠지게 된 건 미국 매사추세츠대학에 다니던 때에요. 서울대 해양학과를 졸업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유학을 갔던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해외 축구를 접하게 됐습니다.”

 

학과 공부 틈틈이 국내 최대 축구온라인커뮤니티였던 ‘사커라인’에 연재한 축구 칼럼과 관전평들은 한순간에 그를 축구 마니아들이 인정하는 재야의 축구 고수로 만들었다. 난다 긴다 하는 축덕들이 모인 그곳에서도 해외 축구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경기 데이터를 기반으로 쓴 날카로운 평론은 마니아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급기야 그는 사이트 운영자의 권유로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해 사커라인 공동 운영자로 참여하며 축구와의 동행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사커라인과 스포츠 전문 채널 MBC ESPN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2006년 독일월드컵 때부터 지상파 KBS의 축구해설위원으로 합류한 그는 지금껏 수많은 축구 중계를 통해 재치 있는 입담과 폭넓은 축구 지식으로 팬들의 사랑에 응답하고 있는 중이다.

 

축구팬들이 인정하는 한준희 해설가의 가장 큰 장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료 수집과 날카로운 분석을 들 수 있다. 한 경기를 해설하기 위해 그는 양팀 합쳐 최소한 6〜개의 직전 경기를 찾아보며 철저히 해설을 준비한다.

 

“제 눈으로 직접 팀의 전술, 전략, 선수들의 컨디션을 확인해야 순간순간 매끄러운 해설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경기가 열릴 때는 출전 선수들뿐만 아니라 관중석에 앉은 주요 인사들에 대한 신상정보까지 꿰고 있어야 합니다. 사진을 보며 얼굴을 익히고 그 경기의 의미까지 염두에 둬야 하니 준비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죠. 하나마나한 얘기로 시간이나 때우는 해설은 시청자들이 금방 알아채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요.”
 



몇 권의 축구 관련 서적을 번역 출간하기도 한 그는 축구계의 대표적인 학구파 해설위원이다.


요즘에는 축구전문가 못지않게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축덕들이 많아 준비 없는 해설은 금방 탄로가 난다. 그럴수록 더 폭넓고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게 그가 지금껏 해설위원으로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대부분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다른 축구해설자들에 비해 선수 경력이 전무한 그는 모두들 곤한 잠에 빠져 있는 새벽 시간에 혼자 일어나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EPL(잉글랜드 프로축구리그), 라리가(스페인 프로축구리그), 분데스리가(독일 프로축구리그) 등의 해외 축구 경기를 살펴보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매일 밤 그의 책상엔 전 세계 주요 팀과 선수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 데이터들이 수북이 쌓인다. 어느덧 국내 축구해설가 중 최연장자가 된 지금도 그는 가장 뛰어난 정보력과 전문성을 갖춘 해설위원으로 꼽힌다.

 

“부득이하게 경기를 못 챙겨본 경우에는 솔직하게 양해를 구하는 게 임기응변으로 대충 넘어가는 것보다 낫습니다. 팬들은 완벽하지 못한 해설자보다 시청자를 존중하지 않는 해설자를 더 싫어합니다. 축구라는 운동이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스물두 명의 플레이어들이 정직하게 맨몸으로 부딪치는 경기잖아요. 그만큼 축구는 페어플레이가 생명이에요. 축구 해설도 정직함이 생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샤우팅에 가까운 카랑카랑한 목소리, 비선수 출신이라는 약점을 문제 삼는 이들은 더 이상 없다. 철학도다운 논리 전개와 어느 자리에서나 빛을 발하는 타고난 입담 덕분에 요즘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를 찾는 횟수가 늘었다.

 

그는 바쁜 일과 속에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려 할 때마다 자신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故주영광 선생을 떠올리곤 한다. 1970년대 말 분데스리가 축구 경기를 해설해주던 주영광은 스포츠 채널이나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수준 높은 해설로 일세를 풍미했던 해설위원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분데스리가 중계를 위해 해외 축구 잡지까지 구해 보며 선수들 얼굴을 익히고 경기 스타일을 공부하셨다고 해요. 해외 축구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캐스터나 해설위원이 중계 중에 선수 이름을 즉석에서 작명(作名)해주는 경우도 흔하던 시절에 주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라도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피나게 노려하신 분이죠. 선생님처럼 늘 공부하는 해설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축구는 이제 전 세계인이 가장 폭넓게 즐기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프로선수와 아마추어 동호인을 합해 모두 2억 명의 선수가 존재한다는 통계도 있다. 여기에 축구 관계자, 서포터, 팬들까지 더하면 많게는 수십억 명의 인구가 축구라는 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즐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에게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경기에 대한 몰입감을 높여주는 축구해설가의 존재감은 더 높아지고 있다.

 

“국가대표 팀 경기나 리그 경기가 없어도 축구해설자는 해외 축구, 여자 축구, 청소년 축구까지 가능한 많은 경기를 계속 체크하고 있어야 합니다. 중계시간도 불규칙적이라 일반적인 생활 리듬과는 거리가 멀어요. 우스갯소리지만 축구해설위원은 4대 보험도 적용이 안 되는 직업입니다. 그런데도 이 일이 즐거운 건 제가 진심으로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길 원한다. 하지만 정작 그 일이 주어졌을 때 변함없는 열정으로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나갈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걸어다니는 축구 도서관’ 한준희 위원은 취미와 직업의 행복한 동행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입증하고 있다.

 

 

글 이종원 편집장 | 사진 최순호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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