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춤으로 짓는 무정형의 공간 / 현대무용가·크리에이터 김설진


 

현대무용가 김설진(38)의 춤은 일필휘지로 구사한 내면의 유려한 서체이다. 몰입(flow), 혹은 무아지경. 에너지의 발산과 수렴을 반복하는 춤의 언어로 미적 황홀경에 빠지는 상태. 공간이 열리고 시간이 쌓이는 무대 위 강렬한 필치를 따라 관객들은 그가 이끄는 놀이에 참여하며 몰입을 경험한다. 무용가, 안무가, 연출가, 배우, 작가 등으로 명명되는 그는 창작이라는 단어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여전히 성장을 멈추지 않으려는 소년처럼 춤이라는 무경계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 그를 서울 방배동 연습실에서 만나보았다. 뭔가를 표현하는, 아니 표현해야 하는 그에게 있어서 춤과 연기는 어떤 의미일까.

연기와 춤은 다르지 않아요. 아이들의 성장처럼 몸에서 언어로 발달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무대에서 말로 하는 연기를 했기 때문에 TV 연기가 낯설진 않았어요. 다만 무대에서 보이는 것과 앵글에 담기는 것의 차이는 있죠. 배우로서 테크닉적인 디테일이 다른 지점들을 하나씩 배우고 있어요. 악역, 선한 역이라는 캐릭터 설정을 넘어 인물을 입체적으로 창조하는 일이 너무 설레고 매력적이에요. 앞으로 어떤 캐릭터든 빨리 만나고 싶어요(웃음).”

어릴 때부터 호기심 많던 그는 그때그때의 감정과 경험을 낙서(·그림)로 남겼다. 그렇게 쌓인 순간의 기록들만 신발 상자로 4박스. 그중 일부를 엮어 지난해 에세이집 <사부작사부작 01>을 냈고, 동화 3편을 담은 두 번째 책도 출간할 예정이다. 벨기에 생활을 할 때에도 자유시간이 생기면 뭔가를 만드는 데 몰두했다. 버려진 MDF판에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깨진 거울을 붙여서 만든 거울 고래라는 제목의 조형물은 풍부한 상상력의 층위를 보여준다. 실제로 그의 책에는 난 커서 고래가 되고 싶어! 내가 들었던 중에 가장 근사한 꿈이었다”(281p)라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창작이라고 의식하지 않고 즐긴 자유로운 놀이였다. 이를 통해 그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고, 삶의 소소한 변화들은 일상에 지문을 남기며 서서히 찾아왔다.

학창시절 허무주의에 빠져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공중 화장실에서 발견한 낙서가 제 인생을 바꿨어요. 멋있게 책 이런 데서 봐야 하는데(웃음). ‘당신이 죽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 당신이 살아 있을 때 세상은 바뀐다였죠. 그렇게 세상을 바꾸려고 어마어마하게 노력하다가 얼마 전에 깨달았어요. 내가 바뀌지 않으면서 세상을 바꾸려고만 했다는 것을요. 제가 안테나를 꽂고 그것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세상이 달리 보이더라고요.”

낙서가 그의 오래되고영원한 놀이라면 세상을 향해 날개를 달아준 첫 번째 놀이는 이었다. 제주도 소년이었던 그는 우연히 TV에서 현진영과 와와의 슬픈 마네킹무대를 보고 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후 학창시절 그가 가는 모든 곳이 무대가 됐고, 춤에 대한 열정은 쉽게 잠들지 않았다. 2 때는 무작정 상경해서 오디션에 합격했고, 이후 백업댄서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춤추는 직업에 연결해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살고 싶은 것이 꿈이라면 모를까.

가장 재미있는 일이 춤이었고 이야기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낙서하고 움직이고 뛰어다니는 모든 게 놀이였죠. 요즘에는 여기저기서 크리에이티브라는 말을 모토로 하잖아요. 자유롭게 창의성을 키우려면 학교에서부터 벽을 넓혀줘야 하는데 자꾸 벽을 부수라고만 하니 답답하죠. 이미 벽을 다 만들어 놓고.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지식 전달도 중요하지만 먼저 학생들의 생각을 충분히 들어주고 열어줄 준비가 돼있어야 해요.”

그가 스트릿 댄스에서 현대무용으로 춤의 궤도를 수정한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우연히 영화 <백야>무용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춤을 보게 되면서 마음속에 물음표가 생겼고, 이는 곧 느낌표로 바뀐다. 대학에서 춤을 공부해보자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는 특별한 입시교육 없이 그간 자신의 공간과 시간에서 쌓아올린 실력으로 서울예술대학 무용과에 입학했고, 이후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과에서 학업을 이어간다. 하지만 동기들보다 늘 부족함을 체감한 그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연습만 하면서 점점 그들과의 간극을 좁혀갔다.

재능은 없었는데, 배우는 건 재밌었어요. 완벽주의인지는 모르겠고, 쉽게 만족 못하는 성격이라 최소한의 기준치가 높은 편이에요. 넘고자 한 목표도 높았고요. 세상에는 빨리 얻어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늘 남보다 모자랐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이었죠. 아직까지도 제 목표는 나 자신이 가장 냉철한 관객이 되어 스스로를 관찰하고 연습하자예요. 그래서 조금 더디고 부족한 학생들의 심정이 누구보다 이해되더라고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사람들과 함께하는 직업이라 다행이에요. 춤을 통해 소통하는 법을 배웠거든요. 춤은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할 수 없잖아요. 일단 배워야 하니까요.”

그렇게 현대무용가로서의 길을 확고히 다져온 그에게 2008년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새로운 끈을 잡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났고, 우여곡절 끝에 세계적인 현대무용단인 벨기에 피핑톰(Peeping Tom)의 오디션에 참가했다. 치열한 경쟁 끝에 단원이 된 그는 자신이 머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반덴브란데 32번지>(2009), <아 루에, À louer>(2011) 등에서 열연하면서 찰리 채플린과 마르셀 마르소를 능가한다외신의 극찬과 관객의 찬사를 받았다. 그곳에서는 모든 아이디어가 하나의 가능성이 됐다. 가령 누군가 우산 속에서 비가 내리면 어떨까?’하고 무심코 던진 말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자유롭게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일치하거나 상이한 부분을 맞춰가는 작업은 긍정 에너지로 작용했다. 이처럼 무용계에서는 선명한 획을 그었지만, 대중들에게 각인된 결정적인 계기는 Mnet <댄싱9> 시즌23에서 MVP와 우승을 차지하면서이다. 방송 후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반응을 한 몸에 받은 그는 이러한 현상에 힘입어 사람들이 문화계에 관심을 갖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무대가 즐거우면서도 두렵다.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채찍 소리로 들릴 때면내가 왜 이런 직업을 택했을까자문할 때도 있다. 그러나 떨리지만 즐거운, 이 묘한 끌림은 그를 이 순간에도 움직이게 만든다. 흩어진 점들이 모여서 선으로, 다시 면으로 나아가듯이.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김신영 편집장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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