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 자수, 천천히 흐르는 실 그림 / 김민아, 자수 작가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집중해서 만들어내는 걸 좋아했다. 그런 내가 제품 디자이너로, 상품기획자로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갈망했던 것은 천천히 흐르는 삶이었다. 잦은 야근과 해외출장을 반복하면서 흘러가는 일상은 피곤함과 공허함으로 가득 찼다. 물론 내가 기획하고 디자인한 제품들이 하나둘 출시되고 판매되면서 얻은 성취감과 보람은 오랜 기간 일을 사랑하며 보낼 수 있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밤샘 경쟁의 결과로 빚어진 판매 1실적이 나의 삶을 행복으로 채우진 못했다.

그럴 때마다 느꼈던 공허한 마음을 다른 것에 몰두하며 채워나갔다. 때로는 바느질과 꽃이, 요리와 여행이 마음을 채워줬다. 아무래도 일과 다른 편안함을 주고 천천히 집중할 수 있는 것들로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찾아온 실그림자수.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다양한 실 컬러와 작고 귀여운 재료들에 마음을 빼앗겨 시작하게 된 자수. 붓이 아닌 실로, 종이가 아닌 원단에 표현되는 실그림은 신선하고 새로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자수는 빠르게 완성되는 작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을 통해 여러 감정에 집중하며 배울 수 있었다. 실과 바늘이 원단 사이로 오가는 소리, 창 사이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결,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을 열어놓고 차 한 잔을 천천히 준비하는 시간. 조용히 집중해야만 들리는 것들에 위로받고, 그 사이로 그날의 마음이 담긴 음악까지 함께하는 날이면 일상의 크고 작은 고민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예전에 남편과 함께한 출근길에서 요즘 매일 바쁘게 지내서인지 차 안에서 듣던 음악이 더 이상 위로되지가 않아하며 조금은 서글픈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자수를 하면서 다시 음악이 위로와 기쁨으로 다가와 행복하고 감사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렇게 자수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 좋은 마음을 선사했다.

좋은 마음으로 하나둘 완성된 작품들이 시작이 되어 나는 자수 작가로, 프랑스자수 선생님으로 지내고 있다. 손으로 만들어낸 바느질, 그것을 좋아하는 같은 마음으로 만난 소중한 인연. 많은 이들이 자수를 하며 마음의 여유와 위로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자수로부터 배운 여러 마음들을 수업 시간에 전하고 있다. 바쁜 일상에 길들여진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긴 것 같으면 더없이 기쁘고 행복해진다.

손 자수는 기계 자수와 달리 손으로 천천히 완성되는 포근함이 있다. 조금은 삐뚤지만 손 자수에서만 느껴지는 따스함이 있는 것이다. 때로는 완벽하게 선과 땀을 맞추려고 애쓰는 이들을 볼 때면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처음부터 예쁜 작품이 완성돼야만 한다는 결과에 집중하기보다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했으면 한다.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에 더욱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만족할만한 자수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매번 큰 의미의 것들만 빛날 수는 없다. 소소하게 사부작대던 작은 바느질에서 얻은 나의 마음들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것처럼, 많은 이들이 빛나는 기쁨을 자수 안에서 찾았으면 한다. 때로는 대단하고 화려한 것들보다 소소하지만 일상의 여유가 느껴지는 작은 것들로부터 생각보다 많이 위로 받는다는 것을 말이다. 자수를 시작하는 많은 이들이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안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어느새 직업이 되어버린 자수 작가선생님.’ 그 새로운 나의 인생은 바쁘게 흘러가는 중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이야기와 마음이 담긴 실그림이 탄생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실 컬러 하나를 정해서 “merci:”라고 내 마음을 써 내려가기도 하고, 원단위에 수놓은 소담한 꽃다발은 소중한 이들을 위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오늘도 소소한 스케치를 하고, 그것을 재미난 자수 표현법으로 담아내고 있다. 포근하지만 과하지 않게 심플하지만 가볍지 않은, 오랫동안 함께할 괜찮은 작품들을 만들고 싶다. 그런 마음이 담긴 작품들을 한 땀 한 땀 만들어가며 이 재미난 자수의 세상에서 오래도록 머물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물건 위에 새겨진 포근한 실 그림들로 위로를 받는다.

 

사진/ <헬로해피의 처음 프랑스자수>(한빛라이프)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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