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수작 _ 인연의 뿌리 / 엄지영, 플로리스트

나와 꽃의 인연은 예상과는 달리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숨 막히는 회사 생활이 싫어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서부터였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회사 앞 작은 꽃집에서 퇴근 후 꽃을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가구회사에서 상품기획자로 근무하며 늘 따라다녔던 상품개발, 실적 같은 스트레스를 잊고 오로지 꽃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소중했다. 

그러는 와중에 잔잔한 내 마음속에 물결이 일었다. 회사는 오래 다니지 못하겠구나. 나이가 들어서도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다른 누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온전히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게 꽃과 함께하게 된 이유다.

그런 생각에서 시작해 이제 12년차에 접어든 플로리스트 생활. 꽃일을 한다는 것이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 인정받고 일하던 대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것에 주변의 반대가 컸고, 어느 누구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 온전히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시작하다 보니 시작할 때부터 많은 걸 갖출 수 없었다.

게다가 플로리스트라고 하면 대부분 꿈속에서 있을법한 아름답고 우아한 환상을 갖는데, 실제 하는 일을 보면 창의성은 기본이고 체력 없인 할 수 없는 엄청난 노동력이 수반되는 작업들이었다. 그리고 실제 고객을 직접 응대하지 않았던 갑의 자리에서 일을 하다 다양한 성향의 손님을 직접 대하는 과정에서 겪는 마음고생까지. 쉬운 게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시작하기 전 다른 플라워샵에서 2년간 근무하여 준비된 창업을 할 수 있어, 큰 시행착오 없이 비교적 짧은 시일 내에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설 수 있었다. 10년 넘게 플로리스트의 삶을 살면서 그동안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스트레스 총량 불변의 법칙이랄까? 직장생활과 비교해서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양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내리게 되는 결론은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동일하다면, 내가 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옳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있음에도 플로리스트는 매 계절마다 변화무쌍하게 변하고 매해 새롭게 소개되는 꽃과 소재를 이용해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일이기에 매우 매력적이다. 이 장점이 내가 질리지 않고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이고, 내가 언젠가 플로리스트의 삶을 그만둔다면, 그건 아마도 체력이 허락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12년간 내 손으로 만들어 온 작품을 비교해보면 나의 꽃 스타일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초기에는 딱 이런 스타일이다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 오랫동안 이 일을 하고 늘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걸 좋아할 뿐만 아니라, 경험의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고 내 것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들은 대부분 좋은 일이 있을 때 오신다. 주문자뿐만 아니라 받는 분이 내 꽃을 받고 즐거워하시는 걸 보고 들으면 내 작업에 대한 만족감이 충만해진다. 좋은 손님들과의 소중한 인연, 그리고 켜켜이 쌓여져 만들어진 스토리가 점점 늘어난다는 게 뿌듯한, 그런 인생, 소소하게 행복할 거리들이 만들어지는 삶이다.

현재 나는 이 일과 나의 삶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은, 플로리스트인 나와 가드너인 나의 남편이 십여 년간 우직하게 인연의 뿌리를 내리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공간, 가드너스와이프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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