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꿈을 걷다 _ 날고 싶은 하늘 / 박민지, ‘플라이어스’ 대표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니체(F. W. Nietzsche)

처음부터 창업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사회에 조금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더라도 신문 한 귀퉁이에 나의 성과와 함께 이름 석 자 한 번쯤 올라가보는 게 꿈의 전부였다

열정은 있었지만 방향성은 없었다. 어차피 사회가 방향은 제시해줄 테니 나는 열심히 하라는 대로만 하며 살았다그렇게 우등 졸업을 한 나는 백수가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세상은 열패감을 안겨주는 애증의 존재였다. 소속되길 간절히 원하면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원망하기 일쑤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대를 갔어야 하는데.”

요새는 인턴도 경력 있는 애들만 된대.”

이러한 자조 섞인 말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몇 년 간 계약직의 설움을 토로하던 친구는 정규직이 꿈이라는 말까지 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래도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거라 굳게 믿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직장인이 된 순간 깨달았다. 어제와 오늘은 다를 바가 없음을.

사람들은 일을 할 때 불만족의 원인을 힘든 환경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야근이 많아서

업무가 과중해서.’

그런데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희열을 느끼는 변태적 워커홀릭이 다반사다. 여기서 내가 발견한 만족과 불만족을 구분하는 핵심적 속성은 자기통제감이었다. 스스로가 환경을 제어하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 그래서 그 결과가 달다면 더 기뻐할 수 있고, 비록 쓰더라도 겸허히 수용할 수 있는 단단함.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창시절부터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취향과 성향은 무시된 채 옳은 길의 환상 앞에 획일화된 꿈을 꾸었다. 그래서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에 따라 앞만 보고 달려온 청년들은 쳇바퀴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통제감은 상실한 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다소 전향적인 방법이었지만, 나는 창업을 통해 자기통제감을 회복했다.

 

플라이어스는 청년들이 삶의 주도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플랫폼이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한다.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가 더 익숙한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것이란 불편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영역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늘 후순위로 밀려나는 턱에 의지를 가지고 시작한 멤버들조차 바쁘다는 이유로 소홀해지곤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당신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죽기 직전에 이루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금,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그 무엇. 내 스스로가 만들고 창출해내는 경험을 통해 삶에서 자기통제력을 회복하는 활동. 그러한 토대를 마련해주는 곳이 플라이어스이다.

알을 깨고 세상을 대하는 건 설레면서도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것보다 더 피하고 싶은 건 만족스럽지 못한 어제가 오늘도 반복되는 것이다.

 

사진/ 김신영 기자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월간에세이 Essay

월간에세이 Essay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