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 -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목사

사람의 길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사람의 길에서 두 번째 만난 사람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목사

모든 인류가 갈망하던 장수의 꿈은 실현되고 있으나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에서 장수를 복으로 누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선진국보다 급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적절한 사회안전망이 부족하고, 질병과 빈곤, 실업 문제 등 현실이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 앞에 놓인 생과 죽음을 원망 없이 존중하고 뜨겁게 끌어안고 싶습니다. 저마다의 길이 있지만, 다른 누군가를 통해 경험을 확장하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 여러 분야의 인사들을 만나서 ‘사람의 길, 그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하시고

‘어떻게 살고 죽을 것인가?’ 사람의 길에서 두 번째 만난 인물은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목사다. ‘한국어로 하는 가장 아름다운 설교’라 회자되는 그의 설교는 가난한 자기 성찰과 현실을 올곧게 살아갈 용기를 북돋운다. 그는 ‘일상 순례자’로서 인간 삶의 본질과 지향성을 일깨우는 글쓰기를 통해 뭇 인생과 나란히 길을 걷는 속 깊은 친구이길 담담하게 바랐다. 교회 신자들을 친구라 부르고, 담박한 우정으로 소통하면서 그것이 목회자로서 사는 참 기쁨이라 여겼다. 따뜻한 시선과 현상의 이면을 꿰뚫는 통찰력이 탄탄한 그의 글은「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오래된 새 길」「내 영혼의 작은 흔들림」「가시는 길을 따라 나서다」「길은 사람에게로 행한다」「삶이 메시지다」「일상 순례자」「흔들리며 가는 길」로 발간되었다. 옮긴 책으로는「가난한 마음과 결혼한 성자」「예수 새로 보기」「기도의 사람 토머스 머튼」등이 있다.

지난해 발간한「아슬아슬한 희망」에서 “가끔 지렁이를 질투한다.”는 그의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지렁이는 나뭇잎, 풀, 쓰레기 등 버려진 유기물을 제 몸무게만큼 먹어치우는 생태계의 청소부다. 해로운 미생물을 제거하고 기름진 분변토를 내놓아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 그런가 하면 흙 속에 길을 내서 토양에 공기와 수분이 드나드는 통로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지렁이를 닮을 수 없을까?” 흙속을 꿈틀꿈틀 기어 다니는 지렁이의 지극한 생을 부러워하는 그 마음결을 따라가 본다.

겨울 같은 세상에 온기를 만드는 사람들

책 제목으로 쓴 ‘아슬아슬한 희망’은 남해 어느 작은 교회에 사는 소나무 이름이다. 몇 해 전, 남도 어느 교회에 부임했다는 한 후배가 그 소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이삿짐을 풀고 예배당부터 들어가 보았단다. 창으로 든 햇살은 마루에 소복이 쌓인 먼지를 여실히 비추었고, 오랫동안 사람의 온기를 받지 못한 냉기만 쓸쓸히 감돌았다. 몇 달 전부터 교인들이 난방비를 아끼려고 이웃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던 까닭이다. 첫날을 을씨년스럽게 보내고, 어느 날 예배당 뒤편 흙 둔덕에 서 있는 어린 소나무를 만났는데, 흙이 얼고 녹기를 반복한 탓에 애처롭게 뿌리를 드러내놓고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자기 처지처럼 느껴졌단다. 소나무 주변에 대나무로 울타리를 쳐주고 흙으로 뿌리를 감싸주고서 그를 ‘아슬아슬한 희망’이라 불렀다. 그리고 날마다 물을 주고 보살피자, 어느새 자신을 둘러싼 어둠이 걷히더라는 것이다. 희망은 아슬아슬하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고 ‘기어코 살아내기 위한 안간힘’이라 그렇다.

인생이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삶이란 그 질문을 겸허하게 응대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리라.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들어맞는 정답이란 없다. 다만 어렴풋한 방향, 지향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으면 고마운 일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분절된 시간 속에 살면서 즉각 답을 구하러 여기저기 다니는데, 남에게 답을 구하지 말고 진득하게 인내하고 답을 찾아가면서 자기 생을 아꼈으면 좋겠다.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칭얼대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게 본래 문제가 많고 어려운데 칭얼거려봤자 무슨 수용 있나. 기왕 하는 일 즐겁게 하고 못하면 못 하겠다 하는 것이지 누구 탓을 하고 죽네 사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설사 고통스럽더라도 자기의 생을 끌어안으며, 그 자리에서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

나는 겨울 같은 세상에 자그마한 온기라도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싶다. 예전에 시장 통에서 일하시는 분들 보면 새벽부터 나와서 일 시작 전에 큰 드럼통에 불부터 지피는 것을 보았다. 제 손을 녹이기 위한 것이지만, 누구라도 와서 함께 손을 녹일 수 있게 했다. 희망 만들기란 그런 것이 아닐까? 어느 자리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온기를 줄 수 있다.

[출처] 아버지 (201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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